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19년 10월 21일 경북 영일군(迎日郡) 흥해면(興海面) 남송동(南松洞)에 거주하면서 일제(日帝)의 포악한 식민지배를 통분히 여겨 '지금 국운(國運)이 불행(不幸)하여 북(北)에는 독립당(獨立黨)이 있고 서(西)에는 독립론자(獨立論者)가 있어 조선은 흥하고 일국(日國)은 망할 것이므로 대왕(大王)은 속히 현인(賢人)으로 하여금 조선의 왕을 세워 후환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대왕의 생명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문서를 작성, 봉투 앞면에는 구상본(具尙本)이라 쓰고 뒷면에는 대정씨전(大正氏殿)이라 기록하여 다음날인 22일 영일군 포항면(浦項面) 포항동(浦項洞) 우편함에 투입하였다. 이어 1919년 10월 27일 '국운이 불행하여 불측(不測)의 난(亂)이 일어났는데 사람은 남의 죄를 말하기 쉬운 것이어서 이제 구상본이 대왕(大王)의 죄를 말할 것인 즉 참으로 듣는 것이 마땅할 것이니, 첫째는 각국에는 각 주인(主人)이 있는 것이며 주인있는 나라는 취(取)하지 않은 것인데 대왕은 탐폭(貪暴)의 마음으로 강제로 조선유주(朝鮮有主)의 나라를 빼앗아 버리고 생민(生民)을 도탄(塗炭)에 빠지게 하고 돌보지 않음이 죄요, 둘째는 그 나라 임금을 죽이고 충정(忠貞)의 무리를 죽여 자기의 소욕(小慾)을 채우는 것이 죄요, 셋째는 군자(君子)를 소인(小人)으로 만들고 소인을 군자로 만들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죄라. 이 삼죄(三罪)를 가지고 백성의 위에 있음은 잘못으로 대왕의 몸에 해(害)가 미칠뿐 아니라 일국(日國)은 반드시 망(亡)할 것'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써서 봉투 앞면에는 일본황제 대정전(日本皇帝 大正殿)이라 쓰고 뒷면에는 구상본이라 써서 이해 10월 29일 영일군 포항면 포항동 우편함에 투입하였다가 10월 30일 일경에게 붙잡혔다. 1919년 12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不敬)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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