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에 대한제국 육군 진위대에 입대하여 해산될 때까지 교련관으로서 일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당하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에는 북간도에 대한국민회를 조직하고 국민회군(國民會軍) 3백여명을 편성하여 무장시키고 부사령관이 되어 무장항일 투쟁을 하였다. 1920년에는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하고 최진동(崔振東) 사령관의 부관으로서 무력으로 일제에 대항하였다. 1920년 6월에는 독립군 부사령관으로 봉오동전투에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에 대한 일제(日帝)의 반격이 있자 동년 12월에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여 독립군을 정비하였다. 1921년 2월에는 노령의 자유시(自由市)로 이동하여 독립군의 세력 만회를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국민회군을 일단 한인보병자유대대에 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배반으로 1921년 6월에 자유시참변을 당하게 되자 이르크츠크를 거쳐 이청천(李靑天) 등에 이어 다시 만주로 탈출하였다. 1923년 2월에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열리자 국민회군 대표로서 참여하여 동년 6월 10인의 국민위원중 1인으로 선출되었다. 그 뒤 용정(龍井)에 돌아와 계속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24년 9월 6일 용정(龍井)영사관 경찰에 탐지되어 교전중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으며 중상으로 용정(龍井)에 위치한 자혜(慈惠)병원에서 치료하였으나 7일 아침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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