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키기 위한 창의격문을 배포하고, 일본을 구축하자는 조약문에 서명하였다. 1906년에는 의병 참여를 권유하는 상소문을 작성하고, 의병 잔여세력 규합을 시도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
성별
남성
본적지
충청남도 연기
생몰 연월일
1882-02-15 ~ 1927-09-27
운동계열
의병
포상
건국포장 (2015)
활동정보
1905년 의병을 일으키자는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배포하고, 1906년 상소문과 성토문 등을 작성하였다.
1905년 음력 12월 5일 충남 노성(魯城)에서 최익현(崔益鉉)이 작성한 일본을 구축하자는 내용의 「노성궐리사강회시서고조약(魯城闕里祠講會時誓告條約)」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이 조약문 수십 통을 각 군 향교에 발송하였으며, 1906년 1월 30일 궐리사의 유림집회(儒林集會)에 참석하였다.
1906년 2월 11일 고석진(高碩鎭)ㆍ이양호(李養浩)ㆍ조영선(趙泳善) 등과 함께 최익현 명의의 상소문과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성토하는 글, 이남규(李南珪) 등에게 창의 참여를 권하는 글을 보냈다.
1906년 음력 윤4월 전북 태인(泰仁)에서 창의한 최익현의진에 합류하려 했고, 홍주성전투(洪州城戰鬪)에서 패배한 민종식의진(閔宗植義陣) 등 의병잔여세력 규합을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