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始興) 사람이다. 1919년 3월 서울의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민족정신이 강렬하게 반영된 시와 소설 등을 발표하여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대변하였다. 그는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동공원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선포하는 독립선언식에 참석한 후 운집한 3∼4천 명의 군중과 함께 공원을 뛰쳐나와 서울시내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각 외국 공관 및 일제 무단 통치기관 기관을 목표로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도의 수많은 시민들이 합류하여 시위 군중은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종로 1가를 거쳐 일부는 대한문 앞으로 향하였고 일부는 서소문쪽으로 행진하여 다시 대한문 앞에 집결하였다. 군중은 대한문 앞에서 경성일보사에 이르기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녁이 되자 일본군 보병 및 기병대의 강압적인 제지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출판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 1922년 중국으로 건너가 지강대학(之江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그는 1930년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필활동에 종사하였다. 1926년 영화소설 『탈춤』을 발표하였고 1930년에는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신문에 연재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1931년에 발표한 『불사조』는 옥중투쟁문제를 소재로 하여 강렬한 항일저항의식을 표출한 작품으로서 그의 항일정신이 철두철미하게 반영되어 있다. 특히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상록수』는 실화를 바탕으로 식민지 시대의 젊은이가 민족적 현실에 참여하여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여 그 당시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크게 각성시킨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시대를 초월하여 불멸의 민족작품으로 남아있다. 1930년 3월 1일에 쓴 그의 시 「그날이 오면」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분투하였는지를 가슴깊이 느낄 수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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