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타이치(郭泰棋)는 1921년 11월에 광둥호법정부 대총통부(大總統府) 선전국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승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41년에는 국제연맹 중국 대표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주창하고 11월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외교부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공식 승인에 적극 협력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집행부로부터 치하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와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金元鳳) 등 주요 독립운동가와 소통하면서 국민당 정부의 협력과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하였다.
1942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영국 주재 중국 대사로 임명되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 항전 의지 여부를 타진받자, 이를 충칭의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협의했다.
1943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최한 3.1독립선언 제24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