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당시 합천군 묘산면(妙山面)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같은 면내의 윤병석(尹炳奭)·윤병은(尹炳殷) 등 동지들과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 면 각 동리 인사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운동의 준비를 갖추고 거사일은 3월 22일로 약정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오전 11시경 100여 군중이 모인 가운데 주동인물들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그들의 선창에 따라 시위대열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묘산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이때 그는 성경술(成敬戌)과 함께 일군경과의 연락을 끊기 위해 연도(沿道)의 전화줄을 절단하였다. 면사무소 앞에 집합한 군중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현장에 급파된 일헌병의 무차별 총격으로 시위대열은 해산되고 그를 비롯한 주동인물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6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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