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규는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의사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대한인적십자회 간호원 양성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21년 3.1만세운동을 기념한 후, 1928년에는 사리원청년동맹과 관련하여 체포되었고,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명
郭丙奎, 郭炳奎
성별
남성
본적지
황해도 봉산
생몰 연월일
1893-02-18 ~ 1965-10-26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
대통령표창 (2011)
활동정보
곽병규는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의사로 활동했으며, 1920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인적십자회(大韓人赤十字會)가 설립한 간호원 양성학교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기독교 청년회 총회에서 회장에 뽑혀 국내의 중앙청년회와 연합한 후 재미 만국연합회에 가입하고자 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의 일본기독교청년회와도 연합을 꾀하였다.
1921년 2월 대한인적십자회 대표원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및 시베리아에서 회원과 자금 모집 책임을 맡았다. 동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잔치를 베풀고 비밀리에 3.1만세운동을 기념하였다.
1922년 2월 시베리아조선인교육회 부회장에 뽑혔으며, 이후 국내로 들어와 1928년 1월 신간회 사리원지회 설립 당시 부지회장이 되었다. 동년 10월 18일 동아일보 기자 이근호(李根浩)와 중외일보 기자 이문재(李門在), 사리원청년동맹 회원 등이 황해도 사리원 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될 때, 경산병원장(鏡山醫院長)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그 이유는 청년동맹과 관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