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출신 인물은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상해에 임시정부를 설립하였고, 연통제를 통해 국내외 행정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1920년 함흥군에서 이 조직이 탄로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징역 2년 6개월형을 받았다. 1990년에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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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남성
본적지
함경북도 경성
생몰 연월일
1891-11-18 ~ 1952-12-27
운동계열
임시정부
포상
애족장 (1990)
활동정보
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경술국치 이후, 중국이나 노령(露領) 등지로 망명했던 많은 독립지사들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하여 상해(上海)에 모여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됨에 따라 상해에 본부청사를 둔 임시정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는 민주적 국민국가로서의 고유한 업무 수행을 위하여 비밀 행정조직인 연통제(聯通制)를 실시하였다. 연통제는 지방행정제도로서 임시정부가 국내외를 지휘, 감독하기 위한 기본조직이며 기능이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1920년 8월경에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에서 탄로되어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시 연통제의 경성군(鏡城郡) 재무로 선임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그도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8월 11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