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이던 그는 1926년 6월 서울에서 6·10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7월 전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선도하여 노예교육 철폐 등을 부르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1927년 2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깊게 자각하고 있던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익히면서 항일의식을 더욱 공고히 해 갔다. 서울로 올라와 경성노어학교(京城露語學校)에 재학하던 그는 1928년 2월 보성고보 구장회(具將會), 중동학교 이민식(李敏湜)·이철하(李哲夏), 경신학교 최성환(崔星煥), 중앙고보 박판동(朴判同)·유병근(柳秉根), 배재고보 한병선(韓炳宣)·김형원(金炯元), 양정고보 이경배(李庚培) 등과 함께 서울시내 사립학교 대표자 모임을 가지며,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학생비밀결사 ‘ㄱ당’을 조직했다.
‘ㄱ당’의 강령은 ① 본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 및 학생운동의 통일을 기하며, ② 학생의 현실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조직을 강고히 할 것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이들은 각 학교의 동맹휴학을 지도하는 한편 1929년 3·1운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선전삐라를 살포하고 일대 시위를 계획했으나, 1928년 말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면서,‘ㄱ당’도 발각되고 말았다.
이 일로 송병채도 1929년 말 일경에 체포되어 1930년 4월 징역 4년을 받고 4년 5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