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교사들마저 추방당한 일제 말기에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양제현(楊濟賢)을 통해 국외의 소식을 전해 듣고 이를 국내의 인사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했다. 1942년 12월 하순경 서울의 조선저축은행(朝鮮貯蓄銀行) 앞에서 길을 걸으면서 경성중앙방송국(京城中央放送局) 제2방송부 편성과 서기 양제현, 김영일(金英一) 등에게 “미국에서는 이승만(李承晩) 일파가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이라 하고 국호를 고려공화국(高麗共和國)이라 칭하고 있으며, 이미 20여 개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소련 및 중경정부에 그 대표를 파견하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당시 「미국의 소리(V.O.A)」 우리말 방송은 하루에 30분씩 3회 했고 ‘중경방송’은 저녁 6시 반부터 30분씩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단파방송 사건’으로 성기석(成基錫) 등의 방송 관계자와 송남헌을 비롯해 홍익범(洪翼範), 허헌(許憲) 등 150여 명이 검속을 당하였다. 송남헌은 1943년 8월 5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朝鮮臨時保安令)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즉시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9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 4월 5일 형 집행 만기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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