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因山)을 기해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와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중동학교(中東學校)의 일부 학생 등이 인산행렬에 격문을 살포하며 ‘대한독립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당시 현장에서 시위운동을 보고 고무된 손병석은 보다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협성실업학교 등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중심으로 제2차 6.10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는 각 학교의 간부 10여 명과 피어선성경학원 기숙사에 모여 격문 수만 매를 인쇄하고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6월 16일 경찰에 발각되어 배재고등보통학교 김동진(金東鎭) 등 동지들이 검거되었고, 그도 이어서 체포되었다. 그는 6월 30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는데, 사건의 확대를 우려한 일제 당국이 서둘러 사건을 종료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4주간의 유기정학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