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원(孫文)은 중국혁명동맹회를 조직해 신해혁명을 일으키고 공화제 정부인 중화민국을 수립하였다. 민족·민권·민생 등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창하고, 이를 중화민국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다. 1920년대 초반 중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그는 “약한 자를 붙들어 주고, 기울어지는 나라를 구제해 주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다”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1921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외무총장 신규식을 중국 광저우(廣州)에 파견하여 호법정부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해 승인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신규식은 쑨원에게 아래의 5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1.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 호법정부는 상호 외교적 승인을 교환한다.
2. 중국 군사학교에 한국 학생의 입학을 허용한다.
3. 중국은 범태평양회의에 출석한 중국대표에게 한국이 회의 개최지에 파견한 대표와 긴밀한 연계를 취하면서 한국독립을 위한 선전활동에 협조하도록 훈령한다.
4. 중국은 한국 군대가 훈련할 수 있도록 일정한 지역을 한국에 조차하는 동시에 5백만원의 차관을 제공한다.
5.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저우에 상주 대표를 파견하며, 그 비용은 중국 호법정부가 부담한다.
쑨원은 이 중 네 번째 항목을 제외한 4 가지 사항에서 동의를 표명하였다.
1921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인 신규식은 오스트리아와 중화민국 정부에 파견되어 정부 승인 문제를 협의했다. 이때 쑨원은 승인을 적극 찬성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민족을 통치하는 정통적인 민주공화 정부임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은 1925년 쑨원이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쑨원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신뢰와 한국독립운동을 위한 지지와 후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초기 조직을 안정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