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동은 1919년 재령군 남률면과 북률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의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결의한 그는 교회 인사들과 함께 시위를 이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
성별
남성
본적지
미상
생몰 연월일
-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국장 (1998)
활동정보
1
919년 재령군 남률면(南栗面)·북률면(北栗面)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교회 장로였던 그는 3·1운동의 소식을 접하면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남률 . 북률 일대의 만세운동을 추진해 갔다. 주로 교회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던 이곳의 만세운동은 황해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었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먼저 남률면 해창리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 3월 6일에는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점령하는 등 독립 경축의 분위기가 절정을 이룬 바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북률면 내종리교회 인사들은 이에 호응하여 3월 10일 내종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일으키니 시위대는 1,000명을 넘었다.
이렇듯 3월 초순 경부터 시작된 남률·북률 지역의 만세시위는 4월에도 계속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군경은 무자비하게 총기를 난사하면서 시위대를 진압하였고, 철저한 검문 검색을 통하여 시위의 주동 인물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박하동도 일경에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 중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옥중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