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위원(渭原)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군 단체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검찰(檢察)로 활약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들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는 독립군을 섬멸시키고자 혈안이 되었다. . 박천규는 이러한 시기인 1920년 10월 6일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 검찰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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