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원 출신으로 1919년 4월 1일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일본 군경의 발포로 순국하였으며, 정부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朴駿圭
성별
남성
본적지
충청북도 청원
생몰 연월일
1863-03-06 ~ 1919-04-01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국장 (1991)
활동정보
충청북도 청원(淸原)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의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여세를 몰아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서,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하였다. 이때 그도 일본 군경의 발포로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