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러시아에서 독립군으로 수차례 항일전쟁에 참여하였다. 박영은 함경북도 경흥군(慶興郡)에서 출생하였으며, 1908년 경흥군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는 전투에 참여하였다. 1910년 가족을 거느리고 북간도 지역 화룡현 삼동포(三洞浦)로 이주하였으며, 1915년 봉오동(鳳吾洞)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박영은 1919년 용정(龍井)에서 3·13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참가하였으며, 봉오동 지역에서 항일무장 독립군을 이끌던 최명록(崔明錄, 일명 崔振東)을 도와 대한군무독군부(大韓軍務都督府) 참모와 북로독군부(北路督軍府) 군무부장(軍務副長)으로 활동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에는 러시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독립군 부대들이 통합군단으로 재편성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군수과원(軍需課員)으로 무기 구입 및 사관 생도 모집 활동에 힘을 썼다. 박영은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인 1921∼22년경에는 러시아와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가 통합하여 조직한 독립군부대인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에서 활동하다가 1922년 부하 수십명을 이끌고 영안현으로 귀만(歸滿)하였다. 1924년 안도(安圖)에서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부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에는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하여 조성환(曺成煥), 정신(鄭信), 김좌진(金佐鎭) 등과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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