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平安南道) 강서군(江西郡)에서 출생한 박신일은 이곳에서 손정도와 결혼했다. 손정도는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같은 해 4월 13일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손정도는 1922년까지 상하이에 머물며 국내 유지들로부터 모은 독립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고, 임시정부 활동을 주도했다. 박신일은 이때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머물며 남편의 활동을 지원하고, 자신도 여러 모임에 참석하며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1922년 손정도가 만주(滿洲)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지린으로 이동하자 박신일도 함께 거처를 옮겼다. 지린에서 손정도는 교회를 세워 한인들의 생활 안정과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이와 함께 손정도는 자신의 교회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찾아와 손정도와 함께 독립투쟁 방법을 논의했다. 박신일은 남편을 찾아온 독립운동가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등 생활을 지원하고, 독립자금의 융통을 도왔다. 1931년 2월 19일 손정도가 병사(病死)한 후에도 박신일은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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