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흥곡면(興谷面)에서 정미(丁未) 7조약의 강제체결에 통분(痛憤), 임행숙(林行叔)과 함께 거의(擧義)하여 100여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이천군(利川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한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밀파(密派)된 강태동(姜泰東)이 황종화(黃鍾和)에게 전달한 독립문서인 '적(敵)의 관리(官吏)인 동포에게'라는 격문 200여매와,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는 포고령(布告令) 제1호 '남녀학생에게'라는 격문 200여매를 경기도내 각지에 배포하라는 임무를 받아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