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5년 서울 휘문학교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東亞日報) 기자로 재직하다가 1918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어 이승만(李承晩)이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제1회 조각(組閣) 당시부터 군무부(軍務部) 서기로 임명되어 1921년 초경까지 무력항쟁의 기틀 마련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1926년 군자금 조달을 위한 임무를 띠고 귀국하여 1926∼1928년간에 걸쳐 평북 의주군(義州郡) 비현면(枇峴面)의 사립 신성학교(信成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청소년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28년 이후 중국 동삼성(東三省) 등지를 왕래하며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면서, 독립운동 단체의 연락과 활동상황을 파악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하반신 마비로 귀향하여 계속 투병하다가 1944년 3월 1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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