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용강(龍岡) 사람이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동서(同壻)로 안식교인(安息敎人)이다. 경성(京城)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향리에서 병원을 개업하였으며, 1916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안식교에서 경영하는 적십자의원(赤十字醫院)에서 시무하였으며, 프랑스에 전항(轉航)하기도 하였다. 1919년 7월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의 중심인물로 상해에서 대원 모집과 부상자 구호활동 등을 전개하였고, 동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평남 용강군 조사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3월에는 적십자구호원양성소(赤十字救護員養成所) 교사로 근무하면서 북경(北京)에서 개최한 원동서양선교회(遠東西洋宣敎會) 의원대회(醫院大會)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20년 5월 18일부터 11월 10일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공채관리국(臨時公債管理局) 공채모집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11월에는 대한적십자총회(大韓赤十字總會)에서 감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한편, 1920년 3월 11일 김용정·전재순·이석 등과 함께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단원으로서 안창호를 보좌하였고, 1925년 국내로 들어와 1927년까지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의사부장(議事部長)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및 서재필(徐載弼) 등과 협력하여 윤봉길의거(尹奉吉義擧) 후 상해에서 붙잡힌 안창호의 석방을 위해 미국정부 및 미국 상원의원 보라와 골드버그, 기독교연방회의(The Federal Council of Churches)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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