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고교쿠샤고등공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좌목은 이름뿐인 ‘내선일체’ 정책에 회의를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게 됐다. 그는 “조선인이 현재와 같이 빈곤한 생활을 하는 것은 일본 제국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조선독립을 위해 활동해야만 한다”며 동급생들을 설득하고, “우리들이 조선에 돌아가 조선인만의 회사를 조직하여 일본인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에 돌아가 공업학교 교원이 돼 아동들을 훌륭한 조선인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조선어 폐지는 조선민족으로서의 전통정신을 근절하려는 정책이라고 보고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교육해 조선인다운 의식을 주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활동을 하다 체포된 김좌목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상에 있다가 1943년 8월 14일 고향에서 사망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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