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에서는 김세영(金世榮)·권태원(權泰源) 등에 의해 독립만세운동이 계획되었는데, 당시 목사인 그는 김세영이 보낸 김혁동(金赫東)으로부터 이 계획을 전해 듣고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3월 18일 영덕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3월 16일 교회에서 기독교도인 김암우(金岩佑)·이정규(李正奎)·김용하(金龍河)·김귀근(金貴根)·강대열(姜大烈) 등에게 거사 계획을 알리고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으며, 이튿날에는 김순근(金順根)·송기주(宋基柱) 등에게도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8일 오후 2시 30분경, 그는 영덕 장터에서 50여명의 기독교도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수백명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장터는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황급하게 출동한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