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濟州)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이던 그는 1938년 5월 동네 주민 풍원원우(豊元元羽)에게, "중일전쟁(中日戰爭)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있다는 라디오 방송은 믿기가 어렵다. 일본도 상당한 피해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본의 장래는 위험하다"고 말하였다. 다시 1941년 7월경부터 9월 사이에 위의 풍원원우와 몇 차례 시국담을 나누던 중에, "인도차이나 반도에 얽힌 이해관계로 인하여 영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일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이 패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일본은 3, 4년씩 전쟁을 해 보았자 아무런 소득도 없음으로 해서 이번에 장개석(蔣介石)에게 강화(講和)를 요청했다", "독일이 패전하면 영·미·소 3대 강국이 일본을 공격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일본도 위험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제주도를 중국에 대한 도양폭격(渡洋爆擊)의 발진기지로 만들면서 도내 반일세력을 색출 제거하고자 하여, 우선 적성국(敵性國)인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 조직을 탄압 파괴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도 위의 발언들을 통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1941년 10월 아일랜드인 선교사 3명 및 다른 천주교 신도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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