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경북 안동군 풍산면에서 이준태, 권오설 등과 함께 풍산소작인회를 창립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함.
이명
성별
여성
본적지
경상북도 안동
생몰 연월일
~ 1927-09-17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
건국포장 (2019)
활동정보
1929년 11월, 안동의 양반 지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군(安東郡) 풍산면(豐山面)으로 내려온 이준태·권오설 등과 함께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하였다. 풍산시장에 본영(本營)을 둔 풍산소작인회는 소작농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한 조직으로서, 이후 회원 5,000여 명에 달하는 농민운동단체로 성장하였다. 강경옥은 풍산소작인회가 창립될 때부터 참여하여 집행위원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풍산소작인회는 의결기관인 총회와 집행기관인 집행위원회 체계를 이루고, 각 면 단위에는 출장소를 설치하고 각 동 단위에는 총대를 두며 마을 단위로 반(班)을 조직하는 등 견고한 조직 기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지주들의 강경한 대처에 맞서 소작쟁의를 전개하고, 구속된 회원들과 소작권을 박탈당한 농민들을 돕는 데 적극 나섰다. 이러한 활동으로 풍산지역뿐만 아니라 안동군 내의 와룡(臥龍) 등에도 출장소를 두기에 이르렀다. 1925년 8월 28일 풍산소작인회회관을 건립한 후 풍산소작인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강경옥은 남편이 일찍 사망하고 소작을 짓던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패물까지 팔아서 지원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7년 9월 17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그러자 안동의 각 단체들은 80대 노령의 여성으로서 소작운동에 헌신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성대하게 단체장(團體葬)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합의하였다. 장례식은 1927년 10월 1일 아침 9시 풍산시장에서 열렸다. 강경옥의 장례식이 시위로 확대될 것을 우려한 안동경찰서(安東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이용하여 시위운동을 한다”면서 엄중하게 경계하였다. 정례(定例) 전부터 수천여 명이 모여들자 경찰은 각 단체로부터 온 조기(弔旗)를 압수한 후 영결식을 시장에서 치르지 못하도록 하고 풍산소작인회회관 앞에는 통행을 금지하였다. 결국 강경옥의 유언대로 장례식이 치러지지도 못한 침울한 분위기에서 상여는 수동(水洞) 뒷산으로 옮겨져 저녁 무렵 되어서야 영결식이 종료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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