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안창호(安昌浩)·김구(金九)·이동녕(李東寧)·신채호(申采浩)·노백린(盧伯麟)·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정치·경제·교육·문화 각 분야의 진흥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를 포교하면서 80여명의 신도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上海)로 가서 동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수립에 참여하고, 4월 22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회의에서 군무부 위원으로 조성환(曺成煥)·신 철(申徹)·박종병(朴宗秉)·김충일(金忠一) 등과 함께 5명이 피선되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