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서간도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하였다.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독립군은 소련·연해주 등 각지를 전전하였다.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 세력들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를 조직하여 항일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김세환은 이러한 시기인 1923년 2월 18일 평북 중강진(中江津)에서 군정서(軍政署) 소대장으로서 십 수명의 병사들과 함께 일경과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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