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은 1927년 진주청년회에 가입하고 축구를 통한 체력 향상이 애국,애족이라는 신조로 4257단이라는 축구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1월 진주청년회를 해체하고 진주청년동맹으로 조직을 전환하기로 결의한 자리에서 진주청년동맹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3월 말에 개최된 경남청년연맹 제1회 중앙위원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4월 29일 경남청년연맹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고 그 다음날 경남청년연맹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부장으로 선출되어 경상남도 청년운동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강수영은 1928년 5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6월 2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29년 2월 23일 부산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인 1929년 3월 17일 진주청년동맹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4월 12일 조선청년총동맹 간친회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준비위원회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