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남 정평(定平) 사람이다. 1924년 미국에서 이승만(李承晩)과 제휴하면서 시카고동지회(同志會) 회장으로 애국운동을 하였고 1933년 10월 동아일보(東亞日報) 정치부 기자로 1940년 8월 10일까지 재직하였다. 1938년 3월경부터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서울 경신학교(儆信學校) 교장인 미국인 쿤스선교사가 단파수신기로 청취한 중경(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와 미국에서 이승만(李承晩)이 국내에 보내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내용을 입수하여 민족지도자인 송진우(宋鎭禹)·김병로(金炳魯)·이인(李仁)·허헌(許憲) 등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였고 쿤스선교사가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는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편성과 양제현(楊濟賢)을 통하여 해외방송을 입수 전달하여 조국광복에 대비케하는 활동을 하다가 1943년 봄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43년 11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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