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봉오동대첩에 참전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후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황하백은 이러한 시기인 1920년 6월 7일 대한독립군, 국민회군,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에 소속되어 군의(軍醫)로 활동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는 홍범도(洪範圖)의 노력으로 1920년 5월 28일에 홍범도부대, 안무(安武)부대, 최진동(崔振東)부대 등이 연합하여 편성된 것이다. 황하백은 대한북로독군부에 소속되어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봉오동(鳳梧洞)에서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를 섬멸한 봉오동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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