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1921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조직된 제2회 보합단(普合團)의 국내지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소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1921년 중국 북경에서 박용만(朴容萬), 이회영(李會榮) 등이 주도 조직한 제2회 보합단의 경리부장인 김희중(金熙重)의 권유를 받고 동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김희중은 태평양회의가 미국 워싱톤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독립을 공인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다. 이를 위해 국내 각지에 독립단을 결성할 목적으로 동년 8월 귀국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희중은 9월 평소부터 독립운동의 뜻을 함께 하던 황정연, 이춘구(李春求) 등과 모임을 갖고 태평양회의의 개최에 발맞추어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군사령부를 조직할 계획임을 알렸다. 이에 황정연을 경리부 부장, 이춘구를 참모장으로 하는 군사령부를 조직키로 하고 이후 사단 설치를 위한 모의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김희중이 일경의 밀정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황정연도 연루체포되어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21년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