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염동(都染洞) 사람이다. 대한제국군(大韓帝國軍) 부위(副尉)로 근무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동년 8월에 서 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계 화(桂和)·이장녕(李章寧)·김규식(金奎植)·이범석(李範奭)·조성환(曺成煥)·박성태(朴性泰)·정 신(鄭信) 등과 함께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吉林省汪淸縣西大波溝)에서 정의단(正義團)을 개편하여 군정부를 편성하였으며, 동년 12월에 이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칭하였다. 1920년 10월에 있었던 청산리(靑山里)독립전쟁에 대대장 서리겸 제2중대장으로 김좌진·나중소(羅仲昭)·박영희(朴寧熙) 등과 함께 참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대한독립단에 합류하여 노령 등지에서 계속 활동하였다고 하는데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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