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 양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는 독립군을 섬멸시키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군부대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부대는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홍대익은 이러한 시기인 1922년 5월 17일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 두도구(頭道溝)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월경한 평북 자성(慈城)경찰서 일경 10여명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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