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선, 김교선, 한동규, 이순구, 조인원, 유관순 등이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날에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도중 일본 헌병의 발포로 유관순의 아버지와 함께 19명이 사망하고 유관순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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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남성
본적지
충청남도 천안
생몰 연월일
1893-07-08 ~ 1919-04-01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국장 (1991)
활동정보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 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아우내 장터에 모인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호응하니 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흥분된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하여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며, 야만적인 발포를 계속함으로써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하였다. 이때 그도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