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산(光山) 사람이다. 기삼연(奇參衍) 의진의 의병장으로 전남·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5년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단발령이 강행되자, 이듬해 2월 전남 장성(長城)에서 삼종질(三從姪)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기삼연이 1907년 9월 재차 봉기함에 김봉규는 이에 동참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삼연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에 이철형(李哲衡)과 함께 중군장이 되어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인 기삼연 의병장을 시종일관 추종하였다. 때문에 그는 기삼연 의병장의 좌우 손발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기삼연 의병장을 도와 1907년 9월 23일 선봉장 김태원(金泰元)과 함께 전북 고창(高敞) 문수암(文殊岩)으로 접근해 오는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었고, 같은 해 12월 7일에는 법성포(法聖浦) 순사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여 소각시킨 후 창곡(倉穀)을 탈취하는 전과를 올리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1908년 2월 2일 기삼연 의병장이 붙잡혀 순국한 이후에는 박도경(朴道京)과 함께 이 의진의 본진을 이끌며 대일 항전을 지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박도경과 함께 붙잡혀 일제의 회유를 당했지만, 그는 "나라의 신민으로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천지간의 바른 도리이다"라고 하며 끝내 거절하고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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