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1월 14일 아침부터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가(獨立歌)를 불렀다. 사감실에 투석하여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항쟁했다. 15일에도 독립 투쟁을 이어갔고, 16일부터는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결국 학교는 19일 임시휴교를 발표하였다. 1930년 1월 8일 개학 후에는 동맹휴학과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으로 식민지교육 거부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당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사채는 평소 독립운동에 힘쓰던 오빠 강해석(姜海錫)·강석원(姜錫元)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함양해오고 있었다. 그는 구속학생 석방과 식민지교육 철폐를 요구하는 교내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개학 후에도 백지동맹 등의 방법으로 투쟁하다가 1930년 1월 20일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