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에서 촉발한 만세운동 소식은 곧 개성에도 전파되었다. 개성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와 송도고등보통학교(松都高等普通學校) 생도들이 중심이 되어 벌어졌다.
과자공장에서 일하던 강부성은 3월 3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자택 부근에서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자 이들과 함께 만세를 외친 후 자택으로 돌아가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 나갔다. 오후 8시경 남대문 부근으로 가서 그곳에 모여 있는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시위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