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우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정부수립 이후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1950년 2월경 제2사단 제25연대에 입대했다. 제25연대는 1949년 6월 20일 대전에서 제2사단 예하로 창설되었다. 6·25전쟁 발발 전 1주 전인 6월 1일 제7사단 제3연대가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6월 15일부로 제2사단 제25연대가 제7사단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주둔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의정부로 이동하지 못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원래 소속인 제2사단으로 다시 복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제25연대는 공비토벌 차 안동에 있던 제1대대를 제외하고 제2, 3대대를 동반하고 25일 밤 온양을 출발하여 26일 오후에 백석천 방어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이곳에서 적 전차 1대의 궤도를 파괴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기도 했으나, 27일 적 주력의 보·전·포 협동에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여, 창동 방어선의 우이동, 미아리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하다 광나루를 건너 철수했다. 연대는 수원에서 재편성을 한 다음 6월 30일 판교에 투입되었고, 7월 1일 적의 공격을 받았다. 인접에 배치한 육사 생도대대의 진지가 무너지자, 연대장(김병휘 중령)은 대대장들과 함께 직접 역습에 가담하여 적진으로 뛰어들었지만 제3대대장이 전사하고, 연대장도 부상을 입었다. 이에 연대는 금곡리로 철수하면서 적을 지연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연대는 전투력이 거의 소모되었고, 7월 5일 국군의 부대 재편성 때 해체되고 말았다. 연대는 8월 7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었다. 8월 8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기계 북방까지 진출하자, 육군본부는 제25연대를 제3사단에 배속하여 안강으로 급파했다. 8월 9일 서 일병이 소속된 제1대대가 안강 북쪽의 445고지에, 제3대대가 포항 북쪽의 소티재를 각각 점령했다. 이 날 육군본부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를 급히 편성하여 제25연대를 비롯하여 제17연대, 제26연대, 제1·2유격대대, 해군육전대 등을 배속시켜 안강으로 출동시켰다. 8월 12일 북한군 제12사단은 기계 남쪽 445고지 일대에 배치된 제1대대를 집중 공격했다. 제1대대가 밀려나자 연대는 제3대대를 교체 투입하는 등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계속되는 적의 공격에 전투력이 소진되었다. 결국 제17연대가 투입되어 연대지역을 담당하게 되었고, 연대는 8월 16일 해체되어 제26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서 일병은 진지를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9월 15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서정우 일병의 위패(12판-2면-1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2-ㅍ-031)에 그의 이름을 새겨, 후세들이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본받도록 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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