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우 일병은 충청북도 중원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50년 1월 17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11연대는 개성지역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후 1950년 4월 25일 제11연대가 개성지역 38도선 경계임무를 제12연대에게 인계하고 예비로 전환되면서 연대는 제13연대로 전환되었다.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12연대를 좌측 개성일대에, 제13연대를 우측 임진강일대에 배치해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1연대는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었다. 서정우 일병은 개성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서정우 일병은 임진강 도하저지 작전에 참전하여 용전분투했으나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우세했다. 연대 일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그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고, 그 과정에서 서 일병과 연대병력이 구축했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서 일병과 일부병력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했다. 모든 것이 불비한 여건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북한군을 물리치는 수훈을 세웠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였으나 끝내 진지를 지켜내지 못하고 서정우 일병은 1950년 6월 25일 봉일천 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서정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0-ㅅ-008)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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