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병곡면 병곡동(炳谷面炳谷洞)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은 오후 1시경 영해읍(寧海邑) 성내동(城內洞)장터에서 시작하여 일본인 소학교·우편소·면사무소 등을 파괴하는 등 대대적이고도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킨 후, 오후 2시경 2백여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온 정규하(丁奎河)·박수환(朴壽煥) 등의 주동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이날 연도에 있다가 오후 2시 30분경 시위대열에 합세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병곡경찰주재소를 향하여 시위행진하였다. 이때 병곡주재소에서는 영해주재소로부터 이와같은 시위 사실을 연락받고 인근 평해(平海)의 일본 헌병분견소에 응원을 요청하고,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가 시위군중과 함께 주재소에 도착하자, 일본 경찰이 나와서 이를 제지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투석으로 대항하며 곤봉과 낫 등을 들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건물을 파괴하고 주임순사 궁기무인(宮岐武人)의 비품과 서류·기물 등을 파기한 후 면사무소로 가서 그곳 건물도 완전 파괴해 버렸다. 그러던 중 평해에서 응원나온 3명의 일본 헌병과 경찰이 합세하여 총을 겨누며 위협하니, 정규하의 만류로 오후 6시경 시위군중은 자진 해산하였다. 그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로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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