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식 일등병은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던 1951년 8월 제주도 서귀포시 모슬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다. 그는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1해병연대 제5대대에 배속되어 판문점에서 임진강 유역에 이르는 장단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민중식 일등병이 입대할 당시 전황은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수도서울 방위에 역점을 둔 군사작전으로 미 해병이 판문점 동남방 임진강 유역지역을, 제1해병연대는 사천강과 김포반도에 전개하여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민중식 일등병과 제1해병연대는 1952년 3월부터 휴전 시까지 판문점에서 사천강에 이르는 임진강 하구까지 11km에 달하는 주저항선과 김포반도 전방의 8개 전초진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52년 3월부터 엄청난 인해전술과 포격을 가하여 주저항선을 위협해 오던 중공군은 10월 초부터 추계공세를 시작으로 대공세를 가해왔으나, 민중식 일등병과 연대는 전초진지선을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러한 전황에서 연대는 주간에 적 포탄으로 인해서, 야간에는 적의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민중식 일등병이 참전한 전선은 10월 31일 중공군 약 2개 연대 병력의 치열한 집중포격으로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이 피탈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민중식 하사와 대대 장병들은 적 포격이 집중되는 동안 각 엄체호에서 조용히 기다리다가 그들 포격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진지로 돌아가 일제히 적의 공격 방향에 과감한 역습을 전개하여 끝내 진지를 사수하였다.
민중식 일등병과 대대는 이날 전투에서 6명이 전사하고, 5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 치열한 전투에서 민중식 일등병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안타깝게도 중상을 입은 후, 제36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1951년 12월 13일 끝내 장단지구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민중식 일등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하고(21-4-1119)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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