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식 일등병은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8년 5월 1일 전라북도 군산에서 창설된 제12연대에 입대했다. 류중식 일등병과 제12연대는 후방지역 작전을 수행하다가 1949년 5월 12일 제1사단 창설되면서 제1사단에 예속되었다.
류중식 일등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사단사령부를 예비인 제11연대와 함께 수색(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동)에 두고 제12연대를 개성 북쪽에, 제13연대를 고랑포 일대에 배치해 94㎞에 이르는 38도선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류중식 일등병과 제12연대 장병은 38도선 경계진지의 방어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류중식 일등병 등 장병은 진지공사와 함께 진지방어훈련을 계속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류중식 일등병이 전투력 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1949년의 상황은 긴박했다. 그해 5월 송악산에서 발생한 송악산 전투로 제12연대는 육탄10용사가 산화하는 등 준전시상황에서 38도선 경계근무를 수행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류중식 일등병은 그날 아침 개성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에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했다. 국군은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없었다. 2.36인치 로켓포는 T-34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다. 일부 장병은 대전차특공대를 조직해 육탄공격을 시도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류중식 일등병과 장병 모두는 악조건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류중식 일등병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 류중식 일등병은 전쟁이 시작된 첫날인 1950년 6월 25일 개성지구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류중식 일등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34-2-134)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009-ㅎ-055)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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