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휴배 일등병은 1929년 11월 9일 전라남도 승주군 황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오직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11월경 제8사단에 입대했다. 김휴배 일등병과 제8사단은 미 제8군의 크리스마스공세(1950.11.24.)에 참가하여 영원에서 회천으로 반격하자 중공군 2차 공세(1950.11.25∼12.2)로 맞섰다. 제8사단은 영원 북방의 양감령과 고성산 일대에서 방어태세로 전환하여 중공군 제42군단을 저지했다. 이때 동남방의 맹산지역이 돌파되어 방어에 실패하고 가창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고 전투력을 회복했다. 김휴배 일등병과 제8사단은 이 전투로 인하여 3개 연대가 분산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특히, 미 제8군의 동측방을 방호하는데 실패하여 전세가 기우려지는 상황을 맞았다. 군단예비로 전환하여 강동으로 철수했다. 김휴배 일등병과 제8사단은 12.1∼12일간 중공군의 압도적인 공세에 밀려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방의 상동에서 토산으로 철수하여 전투력을 회복하고 연천으로 철수했다. 제8사단 16연대가 선두로 신장리 도섭장에 도착한 순간 사단을 포위한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패잔병 2개 대대규모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았으나, 임진강 서쪽 520고지와 그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다. 제8사단은 12월 10일 제2군에서 제3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동부전선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김휴배 일등병은 중공군의 압도적인 공세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전분투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1950년 12월 12일 김휴배 일등병은 21세의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토산부근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김휴배 일등병의 위패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060-ㅈ-026)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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