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일등병은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오직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11월경 제8사단에 입대했다. 김한수 일등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유엔군 최종공세인 크리스마스공세(1950.11.24.)에 참가하여 반격을 개시하자 중공군은 2차 공세(1950.11.25∼12.2)로 맞섰다. 김한수 일등병과 제8사단은 12.1∼12일간 중공군의 압도적인 공세에 밀려 토산으로 철수하여 전투력을 회복하고 연천으로 철수했다. 김한수 일등병과 제8사단은 중공군의 공세로 많은 피해를 입고 12월 10일 제2군단에서 제3군단으로 배속 전환하여 12월 13일까지 동부전선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했다. 김한수 일등병과 제8사단은 군단의 우측 경운산-추전리를 연하는 선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때 12월 31일 중공군의 3차 공세(1950.12.31.∼1951.1.8)가 개시되어 북한군 제2군단, 제5군단은 춘천-원주를 목표로 진격하여 중부전선의 춘양정면을 돌파했다. 김한수 일등병과 제8사단은 1.2∼18일간 제3군단에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7도선으로 철수했다. 제8사단은 홍천-횡성으로 철수 간 홍천 서남 10km 양덕원리에서 제2전선부대와 격전으로 피아간 피해를 입었다. 미 제10군단장은 제8사단을 충주 동쪽 황강으로 진출하여 제2사단, 제5사단과 같이 원주-제천-단양-안동-의성을 연하는 선에서 종심방어를 강화했다. 김한수 일등병은 철수 간 북한군과의 격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전분투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1951년 1월 18일 김한수 일등병은 22세의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홍천지역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김한수 일등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03-6-137)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119-ㅌ-074)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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