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김좌진(金佐鎭)이 청산리독립전쟁을 치른 후 노령(露領)으로 들어갔다가 1922년 6월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을 당하고 북만의 영안현(寧安縣)으로 돌아와 흩어진 동지들을 모아 신민부(新民府)를 새로 조직하자 그는 허성묵(許聖默)등과 같이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신민부 선전부 위원장인 허성묵(許聖默)을 비롯하여 김병희(金炳禧)·김연수(金演秀)·여봉구(呂鳳九)·이기진(李基珍)·홍익창(洪益昌)·최두현(崔斗鉉)·박봉익(朴鳳益) 등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을 하던 중에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일제는 4년간을 미결로 옥고를 치르게 한 후, 1927년 8월 14일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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