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25년 3월 10일 만주 영안(永安)에서 김규식(金奎植)·김좌진(金佐鎭)·조성환(曺成煥)·현천묵(玄天默) 등과 함께 신민부(新民府)의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심판부위원장(審判部委員長)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12월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개최된 신민부 총회에서 군사부(軍事部) 활동에 대한 비난으로 김좌진의 군정파(軍政派, 일명 石頭河子派)와 최호(崔灝) 등의 민정파(民政派, 일명 二頭河子派)로 분열되자, 신숙(申肅) 등과 함께 민정파를 이끌면서 1928년 5월 하순 정의부(正義府)의 김동삼(金東三)·현익철(玄益哲)·최동오(崔東旿)·김원식(金元植), 신민부의 이연·송상하·여호림, 참의부(參議府)의 심용준·김소하·임병무 등과 3부통일협의회(三府統一協議會)를 개최하고 재만동포의 자치문제와 혁명전선의 통합 등에 관해 논의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8년 6월에는 고려국민당(高麗國民黨)의 이름으로 군정파의 리더 김좌진과 정신(鄭信)을 성토하는 격문을 발표하였으며, 동년 11월 길림(吉林) 동북 대둔(大屯)에서 개최된 정의부·신민부·참의부 대표와 함께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하였고, 이듬해 4월 정의부·신민부·참의부를 통합하는 자치기관으로 국민부(國民府) 결성에 기여하고 교통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9월 길림(吉林)에서 이탁(李鐸)·최동오·현익철·유동열(柳東說) 등과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조선혁명당이 조직한 길흑특별위원회(吉黑特別委員會)의 특별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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