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익은 경상남도 함양 출신으로 1919년 4월 2일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날 조카 하승현이 시위 중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순국하자, 김한익은 헌병소로 달려가 중상을 입고 8개월 치료 후 1922년 5월 4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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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남성
본적지
경상남도 함양
생몰 연월일
1883-09-15 ~ 1922-05-04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족장 (1990)
활동정보
경상남도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8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했던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실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에 의하여 계획되었다.
이때 그의 조카인 하승현(河升鉉)이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3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중, 김한익이 체포된 데 분개하여 윤영하(尹榮夏)와 함께 헌병분견소 정문을 박차고 돌진하다가 이를 제지하던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는 하승현의 아버지이자 그의 형인 하재연(河在衍)과 함께 헌병분견소로 달려가서 일본 헌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일본 헌병이 발사한 권총 3발이 명중하여 중상을 입었으며, 진주 자혜병원(晋州 慈惠病院)에 입원하여 8개월간 치료하였으나, 1922년 5월 4일 총상의 여독으로 신음하다가 끝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