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미주지역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쏠넥지방 파출위원으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한편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응호는 1919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같은 해 5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쏠넥지방파출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의연금 모집에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대한인국민회는 미주를 비롯하여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도 지부를 설치하였다. 미주의 쏠넥지방회는 1919년 5월 결성된 것이다. 이후 독립의연금 납부 등을 통해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42년 2월에는 디트로이트 지방회 총무, 서기, 통신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지역 특성상 교민사회의 자치 및 단합을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대한 독립외교활동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그는 이와 같은 지역여건 속에서 대한인국민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9년 5월부터 광복되는 1945년까지 많은 독립의연금을 지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