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항일 독립운동인 3.1만세운동은 전라북도 남원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31일 덕과(德果)면사무소에서 면장 이석기(李奭器)가 4월 3일 식수기념일에 마을 구장들을 모아 800여 명의 주민이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사율리(沙律里)에서 격문 ‘아동포제군(我同胞諸君)’을 낭독하고 21매를 배포한 끝에 남원헌병분대에 체포되었다. 이에 이형기(李炯器) 등은 그날 밤 9시에 모여 면장의 석방을 요구하고 만세시위를 벌이자고 협의했다. 4월 4일 남원면 북시장에서 군중 1,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전라남도(全羅南道) 구례(求禮) 출신 천연도가 야채 가게 근처에서 시위대에 합류했다. 만세시위가 남원헌병분대까지 진출하자 일제 헌병이 발표하며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로 인하여 현장에서 방진형(方鎭炯)‧정한익(丁漢益)‧김홍록(金洪綠) 등 8명이 순국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당했으며 20여 명이 체포되었다. 천연도는 남원면 시장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남원헌병분대 헌병에게 체포되어 신문조사를 받은 후 4월 25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검사분국에 기소됐다. 1919년 5월 9일 ‘보안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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