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청(陳誠)은 1937년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의 군사위원회 정치부장으로 한국독립을 위해 정치·경제·군사 등 각 방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38년 봄 김원봉(金元鳳)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은 우한(武漢)에서 조선청년전위동맹 등 좌익계통의 정당과 합작하여 이른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였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대일선전공작을 전개하는 한편 군사조직으로 조선의용대를 창설코자 했는데 이때 국민당 정부 측에서 교섭에 나선 인물이 바로 천청이었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무기 등 군수품을 원조했다. 김구 주석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신변 보호는 물론 한국청년들의 군사교육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1945년에는 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청년을 중국군에서 광복군에 인도하는 데 힘쓰기도 하였다. 1945년 6월에 천청이 작성한 문건에 의하면 당시 제9전구사령부 정치부에 다수의 한국 청년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충칭(重慶)으로 가 한국독립운동에 참가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면서 “이들을 한 곳에 모아 훈련시키고자 하니 해당 군부에 연락하여 속히 한국 청년들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인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김구 주석의 요청입니다. 만일 해당 군부에서 연락이 오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미군에 요청하여 비행기편으로 이들을 충칭으로 이송하여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 합니다. 김구 주석의 이같은 요청을 전하오니 귀 정치부에서는 이런 사정을 제9전구사령부 정치부에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는 의견을 보고하였다. 정부는 1966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