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궈푸(陳果夫)는 191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이 결성한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신아동제사는 1912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한국과 중국 지사들의 친선단체였다. 1919년 이후 중국국민당의 지도급 인사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요인들의 신변 보호에 힘쓰는 등 한국독립운동에 협조하였다. 1932년 윤봉길의사 의거 후 장제스와 김구의 면담을 주선했다. 한국 독립군 간부 양성을 위한 난징(南京)중앙군관학교 한인반을 특설하여 이후 한국인을 입학시키는 데 힘쓰기도 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주요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비밀리에 보호하였다. 윤봉길 의거 직후 일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김구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천궈푸를 비롯한 국민당 정부 요인 천리푸(陳立夫)·우티에청(吳鐵城)·주칭란(朱慶瀾) 등은 김구의 피신을 직접 도와주었다. 한편 국민당 정부는 장제스와 김구의 회담 후부터 김구에게 매월 5천원을 지원해주었다. 1940년 충칭(重慶)에 소재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42년 충칭에서 열린 한중문화협회 창립대회에서는 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 명예이사로 추대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시까지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1966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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